장재형목사 – 나라가 임하옵시며

1.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주기도문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기도로 알려져 있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친밀한 부름으로 시작하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그분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서 각각 기록된 주기도문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나, 기록 시점과 저자의 정황에 따라 다소 다른 표현을 보이기도 한다. 마태복음의 기록자인 마태는 유대인이었기에 예수께서 유대인의 메시야가 되심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했다. 반면에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 전체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이로 인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온 인류를 향한 보편적 메시야로서 드러난다.

특히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교회의 역사와 비전을 끊임없이 이끌어 온 영적 지도자로서, 성도들이 더욱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간절히 바라보며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독려한다. 그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메시지는, 주기도문에서 드러나는 두 가지 대전제와 기도자의 세 가지 간구를 분명히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첫째 대전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고, 둘째 대전제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이 두 가지 대전제를 견고히 붙들고 기도할 때, 우리가 진정 바르고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그 기도를 통해 진정한 변화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특히,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문이 직접 제시한다. 야고보서 4장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했듯이, 우리 기도가 빗나가는 경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우리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기 때문이 많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올바른 기도의 목적은“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최우선 순위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라는 점이, ‘장재형 목사’가 줄곧 강조해 온 메시지의 핵심 중 하나다.

또한 주기도문에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현재의 문제), 용서에 대해 기도하며(과거의 문제),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미래의 문제) 세 가지 간구가 이어진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간구에 앞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것의 초점이 되게 하는 ‘두 대전제’가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일상의 실제적인 요구와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과거의 상처 등 다양한 기도 제목이 있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나라를 높이는 태도를 갖출 때에야 비로소 그 기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주기도문의 이러한 구조와 신학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과 방향을 명확히 일러주는데, ‘장재형 목사’는 이를 실제 사역에 적용하면서 교회 내 여러 부문에서 꾸준히 가르쳐 왔다.

특히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문구를 두고, 영어권 성경 번역본인 KJV(King James Version)의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과 NIV, ESV 등의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을 비교하는 논의가 있었다. KJV에는 “in earth”라는 표현이 있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온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스며드는 이미지를 더 풍부하게 떠올리게 한다. 반면 “on earth”는 건축적이고 외적 확장의 뉘앙스를 전한다. 두 표현은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외형적으로도 드러나고 확장된다는 복합적인 이미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모두 의미가 깊다. ‘장재형 목사’ 또한 이 부분을 자주 강조하며,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영혼 구원과 내적 변화는 물론, 눈에 보이는 세상의 구조와 문화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의미한다. 이 나라는 구원받은 성도가 간절히 사모하는 목표이자,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기도로서 구하라 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 도래했지만 동시에 완성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를 “이미와 아직 사이(already but not yet)”라고 부른다. 중생(born again)과 성령의 내주를 체험한 성도라면, 이 땅에 임하여 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고대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중생(born again),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신앙적 정체성을 갖출 때,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이라는 기도의 내용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간절히 바랄 수 있게 된다.

한편, 교회의 역사와 함께하면서도 때로는 교리를 둘러싼 신학적 분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천년왕국론을 놓고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 다양한 관점이 갈라지고, 교회 내에서 “이 땅에 천국이 임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때로는 뜨겁게 분쟁을 일으킨다. 에반젤리컬 계통 일부는 세상이 점점 더 타락하고 악해질수록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워진다고 믿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완성은 불가능하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에 특정 교단이나 신학 전통에서는 이미 교회가 곧 하나님나라라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하여, 미래적 종말에 대한 기대를 간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 주기도문을 통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치셨고, 그것이 기독교인이 간절히 구해야 할 기도임을 분명히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의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서 그 나라가 실제로 확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 가고, 각 지역 교회와 선교 단체가 더욱 성장하고 확장되어, 인류 삶의 구석구석에 복음의 누룩이 파고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후서 3장에 나타난 말씀은 우리의 신앙 태도를 더욱 날카롭게 일깨운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모든 것이 계속 같지 않느냐?”라고 비웃지만, 베드로 사도는 “주의 날이 도둑같이 이른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결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역사(役事)가 수렴될 것을 역설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말론적 역사의식을 단순히 ‘이 세상이 곧 망할 것이니 포기하자’라는 체념적 자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도리어,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를 믿고, 그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주님의 뜻을 삶 속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통치를 사모하며, 오늘날 개인과 교회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이유로, 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선교, 그리고 실제적인 봉사와 섬김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는 선교 사명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온전히 확장될 수 있도록 사회, 문화, 학문, 예술, 건축, 경영 등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교회가 건축을 잘하는 인재를 세우거나, 문화를 변화시키는 예술가를 발굴하고, 사회 구성원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기관을 설립하는 일은 모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라는 기도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최근 WEA(세계복음주의연맹)의 세계총회에서 “Thy kingdom come”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는데, 이는 교회가 단순히 구호만 외치거나 하늘나라만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준비하며 행동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러한 다짐에는 교회가 종말론적 긴장감과 동시에 현장 속 변혁의 의지를 균형 있게 견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교회 내 여러 대학 설립 사례도 이러한 비전을 뒷받침한다. 16년 동안 함께 사역해 온 세 분의 교수(윌리암 와그너, 죠셉 레이 톨먼, 메릴 스모크)에게 각각 Great Commission University, Harvest University, Jubilee University를 맡겨‘챈슬러(Chancellor)’가 되도록 했고, 이들의 이름을 기념하는 도서관도 세울 예정이다. 또한 티엔더(Tyndale) 박사, 카올리(Caoli) 박사 등 오랜 시간 교회와 함께하며 학문적으로, 사역적으로 기여해 온 분들의 이름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의 도서관에 기념으로 남겨, 다음 세대가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처럼, 사역자들의 이름을 후대에 전함으로써 이들이 걸어온 믿음의 길과 헌신을 교회 역사에 고스란히 새기고, 더욱 굳건한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겠다는 취지다.

나아가 앞으로의 7년은 주로 건축적, 공학적 사역이 강화될 전망이다. 교회와 학교, 선교 사역지를 스스로 건립하고 만들어 나가는 역량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 여러 대륙의 지체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자신들의 기술과 재능으로 지역사회와 대륙 전체를 바꿔 보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장재형 목사’ 또한 이러한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단순히 ‘하늘나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를 실제로 만들어 가는 초석을 다지려 한다.

결국 교회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핵심 사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주기도문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두 대전제가 확고히 서야만 우리의 기도와 사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더불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현재)”, “과거의 상처와 억울함, 죄책을 용서와 은혜로 풀어내는 것(과거)”, “시험과 죄에 빠지지 않고 악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기도하는 것(미래)”이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실제적인 유익과 보호막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간구 역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수차례 해 온 주기도문 강해가 바로 이 점을 역설하며, 교회의 공동체성과 성도의 거룩한 삶을 강조해 왔다.

오늘날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Thy kingdom come”을 외치면서 그 ‘나머지 구절’인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차피 세상은 나빠질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는 식으로 체념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교회 안에서 완성되었다’라는 논리에 매몰되어 과감한 변화를 주저한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본질,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하나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곰곰이 묵상해 보면, 역사와 문화, 삶의 현장 전체를 변화시키는 생명력 있는 복음 운동에 헌신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이 사역을 온전히 감당해 낼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접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 비전을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받게 될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항상 미래를 밝게 바라본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져 가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다. 이 확신은 곧 성도들에게도 전해진다. 예수님 믿는 이들이라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삶을 기대하며 소망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내 어느 지체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장재형 목사’가 제안하는 “매 7년마다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자”는 도전 속에서 미래를 향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다. 이 비전을 공유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꿈을 붙들고 살아가는 공동체야말로 정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헌신하는 공동체다.

결국 주기도문에서 발견되는 이 놀라운 방향성은, 개인의 경건 생활에서 끝나지 않고 온 세계를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장재형 목사’가 설파하는 것처럼, 교회가 교회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주기도문의 핵심 가르침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소명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친히 제시하신 비유들(씨 뿌리는 자, 겨자씨, 누룩 등)은 모두 이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고 내면화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교회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확장해 가는 주체이고, 한편으로는 그 나라가 개인의 영혼과 삶 속 깊이 파고들도록 돕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에, 그 중심 사상과 동력도 예수님에게서 온다. 성도들이 이 기도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그 안에 담긴 소망과 기쁨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바울 사도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롬 12:12)고 말했듯,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이들은 현재의 고난을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여긴다(롬 8:18). 주기도문은 바로 이 영광스러운 나라를 간절히 바라보게 하고, 동시에 현재의 구체적 기도와 실천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사랑으로 연대하며 교회를 세워 나갈 때, 그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펼치길 원하신다. 교회가 자기 문제에 함몰되어 서로 상처 주고받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라는 기도대로 실제 행동에 나설 때, 그 변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지역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한 지도자의 이름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입각한 신앙적 비전과 실천을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그가 이끄는 교회 공동체와 여러 사역의 발전은 단순한 기관 확장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주기도문의 가르침은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명확히 보여 준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핵심인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먼저 구하며, 그것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용서와 보호를 위한 기도를 이어 갈 때, 비로소 기도의 선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가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비전은 교회가 이 대전제를 더욱 선명히 붙잡고, 세상 한가운데에서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이라는 위대한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2. 역사의 종말과 교회의 사명 

주기도문이 단순한 종교적 의식문이나 암송 기도에 그치지 않고, 전 인류 역사와 교회의 사명을 밝히 보여 주는 결정적 가르침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문구를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바로 여기서 교회 공동체는 종말론적 희망을 품되, 그 희망을 근거로 현 세계를 방치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열심히 이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려는 도전에 직면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태도는 “세상의 소금과 빛”(마5:13–14)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소금은 부패를 막고, 빛은 어둠을 밝히며 길을 안내한다. 즉, 하나님나라는 그 백성의 존재 자체를 통해 벌써부터 이 땅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시화하는 현장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이 선교, 교육, 봉사, 문화 사역 등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데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헌신과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장재형 목사’는 성도들이 왜 더욱 실제적인 프로젝트와 비전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세워 나가는 대학과 연구소, 도서관 등은 지식만을 쌓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정의와 사랑, 그리고 복음의 가치가 땅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사역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다. 건축과 공학에 대한 투자는 교회가 물리적인 공간과 시설을 마련함으로써,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이 교육받고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또, 예술과 문화, 미디어,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창의적 활동이 일어날 때, 세상은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생생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는 단지 교회가 세속적인 영역에 “진출”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구현해 보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와 성도가 역사 속에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가 의미하는 바는, 결국 그 한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개혁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이어 가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조금씩 확장된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부분에서 특별히, 현재 교회가 부족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들은 “끝날이 곧 오니, 지금 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거나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일 뿐”이라고 단정 지으려 할 때, 주기도문은 분명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은 하늘나라에서 이미 완전하게 실현된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이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교회와 성도가 힘써야 한다. 그것이 지난 7년, 또 그 이전의 주기마다 교회 공동체가 느헤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직접 성벽을 재건하고, 사역지와 캠퍼스를 세우며,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해 온 이유다. 특히,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 등에는 인프라가 부족하더라도 열정이 충만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교회와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지역 사회는 교회가 전해 주는 복음뿐 아니라 실제적인 기술과 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복음이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릴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역사가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사역을 “하나님의 나라 공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말하며, 영적인 확장뿐 아니라 실제 건축, 문화, 예술, 경영의 영역에서도 교회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을 독려한다.

이 과정에서 교회 내의 다채로운 인재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누군가는 말씀을 전하고 선교하는 일에 헌신하여, 인류의 영적 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건축·엔지니어링, IT, 미디어, 예술 분야 등에서 전문가로 양성되어, 땅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영혼 구원과 삶의 개선이 함께 가는 총체적 개념이며, 주기도문이 제시하는 비전은 교회가 이 두 면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끌어안으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한쪽 극단만을 고집하지 않도록 지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정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일에 모두가 합심해 나가야 함을 설파한다.

또한, 베드로후서 3장에서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며 역사를 단지 반복되는 순환으로만 보는 것에 반대하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역사는 직선적이며, 결국 하나님나라가 도래함으로 완결된다는 전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날을 바라보는 이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벧후 3:11-12)는 권면에 응답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과 경건함”은 단지 개인의 윤리적 정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 사회적 관계 전반에서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통치를 드러내라는 포괄적 요청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 속에는, 개인의 내면적 변화와 더불어 공동체와 세계의 실제적인 변화를 함께 추구하라는 당위가 담겨 있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문제들—예를 들어 기근, 환경 파괴, 인종 차별, 경제적 불평등, 전쟁 등—은 교회가 선교와 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영역이다. 만약 교회가 “우리는 이미 천국 갈 사람들이니 세상 일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등을 돌리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쳐 주신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주기도문을 실제로 실천한다는 것은, 오늘날 이 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협력한다는 뜻과도 맞닿아 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되,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정의와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사역 역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구절의 확장된 해석이며, ‘장재형 목사’는 이를 위해 대학 교육과 연구, 의료봉사, 구제활동 등 다방면의 노력을 교회가 감당해 내야 함을 가르친다.

여기서 “장재형 목사”의 이름이 다시 한 번 부각되는 이유는, 그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성도들에게 상기시키며 실제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단순히 영적 부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주변 사회, 그리고 전 세계의 이웃들이 실제로 변화되고 복음을 통해 한 단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해 왔다. 예컨대, 교회 내에 세워진 여러 대학—Great Commission University, Harvest University, Jubilee University—는 학문과 신앙이 결합된 교육의 장을 제공하여, 지식이 영적인 소명과 결합되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학생들은 지역사회와 세계 각지로 파송되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은” 질서와 은혜를 조금씩 이 땅 위에 세워 나가는 주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성도들과 동역자들이 16년 이상 함께하면서 끊임없이 협력해 온 것은, 단지 한 명의 지도자나 몇몇 간부들의 열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주기도문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나라” 비전이 심장부에서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7년, 14년, 21년, 28년이라는 중요한 시간의 매듭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문이 열렸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Thy kingdom come”이라는 기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체감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친히 이끄시고, 또한 교회가“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에 대한 순종과 실천을 이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시점에서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주기도문의 본질을 상기시키며, 두 가지 대전제—“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를 결코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특히,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망라하는 기도의 세 가지 간구 역시 이 대전제를 전제로 해야만 올바른 길로 가게 됨을 재확인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진정한 변화는 타인의 영혼과 삶을 귀히 여기며, 이들이 하나님나라의 공동상속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교회가 건축이나 사업, 혹은 선교 확장에만 몰두하며 정작 영혼 구원이나 신앙 훈련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주기도문의 본질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영혼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땅에서의 사회 변혁이나 현실적 도움, 교육과 문화 사역에는 무관심하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라는 주님의 기도를 반쯤만 붙들고 있는 격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춰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장재형 목사’와 교회 지도부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 주신 섬김과 사랑,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헌신하신 구원의 길이 바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원리다. 그렇기에 “나라가 임하시오며”를 외치는 성도들은, 그 기도에 걸맞게 겸손과 희생, 그리고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부분을 강조하며, 교회가 외형적으로만 성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확장은 오히려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으로 인도하고, 그 삶의 전반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퍼지도록 섬길 때 현실화된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이 지향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진수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도 겨자씨와 누룩은 미약해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교회가 소수일지라도, 진심으로 주기도문을 붙들며 나아간다면 지역과 문화, 경제, 정치 모든 분야에 누룩처럼 스며들어 거룩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미 완벽한 하나님나라가, “땅에서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신비이자 은혜다.

마지막으로, “장재형 목사”가 이끄는 교회는 여러 사역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맛보고 있다. 28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새로운 도전들이 교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주기도문의 정신을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을 주야로 묵상하고 실천한다면, 분명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결국 주기도문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종말을 기다리되 이 땅에서의 책임을 다하고, 하늘의 기쁨을 소망하되 지금의 고통을 덜어 주며, 하나님의 공의를 외치면서 내 주변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결코 무기력하거나 방관적으로 머무를 수 없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셨구나!”라는 깨달음 속에서 더 힘차게, 더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는, 성도들을 일깨우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고 비전을 나누는 ‘장재형 목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대에 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수많은 도전은 주기도문의 가치와 정신을 재발견함으로써 해답을 찾게 된다. 주기도문은 과거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부흥의 씨앗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예배와 선교, 교육과 봉사, 문화 변혁 등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 “장재형 목사”가 지속적으로 주기도문을 강해하고, 그것을 교회의 실천 지침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교회가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먼저 맛보고 살아 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7년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변화를 허락하시고, 더 많은 영혼이 복음을 통해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야말로 주기도문이 품고 있는 깊은 신비이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결코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가 이를 붙들고 한 걸음씩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름이나 국적, 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온 인류 가운데 당신의 통치를 드러내신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올려 드리는 예배자로서, 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대사로서, 거룩한 사명을 이어 갈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반한 복음이기에, 이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개인과 가정, 그리고 온 세상을 변화시킬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교회는 실망하거나 지치지 않고 계속 전진한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체험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한다면, 이 땅에도 분명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빛이 점점 더 선명하게 번져 갈 것이다. 그렇게 교회가 현장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날을 고대하며, 모든 성도가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을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장재형 목사’가 꿈꾸며 전해 온 기도의 진정한 의미이다. 

www.davidja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