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신비와 교회의 하나됨- 장재형목사

1. 에베소서 1-3장의 교리와 복음의 신비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영적인 진리와 권면을 보내는 편지를 남겼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에베소서를 ‘옥중서신’ 가운데서도 정수(精髓)로 여기며, 교회를 향한 바울 사도의 높은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당부가 담겼다고 평가합니다. “장재형(장다윗)목사” 역시 본서를 깊이 연구하며, 여기에 담긴 복음의 메시지와 삼위일체적 신론을 설교 및 강의에서 자주 강조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에베소서는 1장부터 3장까지가 주로 ‘교리’ 혹은 ‘복음의 신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바울은 이 편지의 서두에서부터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갖고 계셨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선포하고,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것인지 설명합니다. 특히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는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긴 복음 찬양이라고 불리는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택하심, 구속,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이 체계적으로 드러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대목은, 삼위일체적 구원의 역사, 즉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성자 예수님의 속량, 그리고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인을 치심으로써 구원이 보장된다는 위대한 복음의 구도를 선포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두고, “교회가 붙들어야 할 가장 심오한 복음의 정수”라며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 그 소망의 실체를 명확히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그저 현세적 이익이나개인적 안녕을 초월하여,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영광스러운 초청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장재형목사”도 여기서 말하는 ‘부르심의 소망’을 주제로 여러 차례 설교하면서, 성도가 이 땅에서 그저 믿음 생활만 하는것이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늘 강조하곤 했습니다.

더 나아가 에베소서 2장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 유대인이었는지 이방인이었는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서로를 갈라놓던 율법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장재형목사”는 교회 안에서 누구든지 사회적 지위나과거의 배경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여러 설교에서 힘 있게 전해 왔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막힌 담’을 헐어내신 그리스도의 구원은, 신분과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복음의 광범위한 능력을 시사합니다.

에베소서 3장에 이르면, 바울은 자신이 맡은 사도로서의 직무를 ‘비밀을 맡은 자’로 설명하며,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큰 계획 가운데 있음을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이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내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라고 고백하면서도, simultaneously(동시에) “모든 족속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신적 섭리를 설파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4절 이하에서 웅장한 기도를 드리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기를 기원합니다. 이 대목에서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단순히 지적(知的)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삶 속에서 체험되고 공유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사랑에 뿌리를 내린 신자가 어떻게 성령 안에서 충만해질 수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참된 복음의 동력이자 교회의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에베소서의 앞부분(1-3장)은 교리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 역사의 본질, 우리가 받은 부르심과 성령의 내주, 그리고 율법 아래에서 차별받고 소외받던 이방인들조차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상속자가 된다는 탁월한 복음적 선언이 펼쳐집니다. 바울은 이를 ‘복음의 신비’라고 부르며, 모든 성도가 한 몸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교리 혹은 신비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4장 이후에 제시되는 윤리적 권면의 든든한 기초가 됩니다. “장재형목사”가 늘 설교에서 말하듯, 신앙의 윤리가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얕은 결의가 아니라, 구원의 도그마(dogma)가 가져다주는 권능 위에 서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에베소서 4장에서의 윤리적 권면과 핵심 덕목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 이르러, 그토록 웅장하고 고상했던 복음의 신비를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교리에 이어지는 윤리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엡 4:1)라고 시작하며, ‘복음 안에 있는 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직접적인 교훈을 줍니다. 특별히 “장재형목사”는 “에베소서가 교리를 넘어 실제 삶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다는 점에서, 교회의 존재 이유와 사명에 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고 주석 강의에서 말하곤 합니다.

먼저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엡 4:1)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입은 부름’이란, 1장에서언급한 “그 부르심의 소망”과 직접 연결됩니다. 바울은 신앙인이 자신이 받은 소명을 잊지 않고, 그 고귀한 복음의 목적에 맞게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장재형목사”는 ‘부르심’(calling)과 ‘직업’(vocation)을 연결 지어, 신자가 각자 살아가는 사회적 위치와 일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여기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자주 설파합니다. 위그노(Huguenot) 공동체 사례를 들어설명하곤 하는데, 그들은 경건하고 신실하며, 핍박을 당해서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으로 알고 성실히 감당함으로써 산업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콜링(calling)이 있으며, 이를 합당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 태도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4장 2절에서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으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그리고 ‘사랑 안에서의 용납’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동안거짓된 교리나 자칭 사도라는 자들을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칭찬받았지만, 계시록 2장에서 주님으로부터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지키는 투쟁 속에서 점차 사랑의 순수함과 겸손, 온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에베소서 4장과 관련하여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강해야 한다는 명제를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강함은 결코 세상적인 방식의 권력 지향이나 독선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합니다. 구체적으로 겸손과 온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핵심적 인격이고, 그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가르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묘사된 예수님의 자기 비하( 자기 낮춤)와 순종,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철저한 희생이 곧 온유와 겸손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에베소 교인들이 본받기를 원했으며,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참음’ 역시 분열과 갈등 속에서 이기는 무기입니다. 성도들은 서로 연약함이 있기 마련이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교회 내에서 고기 문제, 절기 문제 등으로 갈등하는 형제를 대할 때,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권면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합니다. 용납이란 그저 눈 감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그의 아픔과 무거운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용납은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성장해가는 데 필수적인 태도”라고 설명하면서, 교회 안에서 서로의 허물을 들추어 비난하기보다, 함께 기도하고 보듬어주며 일으켜세우는 노력이 사랑의 실천임을 역설합니다.

이 모든 덕목의 목적은 결국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곧교회는 인간이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단순 집단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여 하나가 되게 하신 신령한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이를 찢어버리는 것은, 곧 주님의 몸을 찢는 죄악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분열이 아닌 연합의 길을 걷는 것이 복음의핵심 정신이며, 교회 본연의 모습입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수차례 설교에서 “주님의 몸은 이미 하나 되어 있는데, 그걸 지키지못하는 인간적 분쟁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니…”(엡 4:4)라고 선언합니다. 교회가 하나라는 말은 곧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한 분이며, 성령도 한 분이시며,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엡 4:5). 교회가 갈라지고 찢어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 “하나” 되신 하나님을 훼손하는 행위와 같다는 엄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삼위일체하나님의 통일성을 특별히 주목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 자체가 공동체적 존재, 곧 성부·성자·성령으로 영원히 하나이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분을 닮아가는 교회라면 당연히 하나 됨을 지향해야 하고, 겸손과 온유,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그것을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계시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역사 속에서, 그리고 초월적 차원에서 동시에 임재하시며, 온 우주에 내재하시는 삼위일체하나님을 선언하는 아주 깊은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온전한 믿음의 공동체로 성장하려면, 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입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이 대목을 설교하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넘어지고 방황할 때, 우리의 신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의 초월과 내재, 그리고 역사 가운데 드러나시는 섭리를 인식할 때, 비로소 교회적 삶이 분열이 아닌 연합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말하는 “만유 위에 계시고(Above all) 만유를 통일하시고(Through all) 만유 안에 계시는(In all) 하나님” 개념은,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신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론을 제시합니다. 초월신론(Transcendence)과 내재신론(Immanence), 나아가 역사적 과정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까지 함께 아우르는 이 표현이, 교회가 “하나”라는 실체를 든든히 세우는 기둥이 된다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들이 예배할 때, 저 하늘 위에만 계신 초월적 하나님을 찾으려고 한쪽 극단에 치우쳐도 안 되고, 반대로 내 안에서 체험되는 하나님만 고집하여 공동체성을 무시해도 안 되며,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 초월과 내재, 그리고 역사 속 현현을 동시에 이루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교회가 균형 잡힌 신앙공동체로 서게된다.”

결국 에베소서 4장의 윤리적 권면의 핵심은, 이전 장(1-3장)에서 선포된 복음의 신비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크고 놀라운 부르심이 있고,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려면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안에서의 용납이 필요합니다. 또한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 공동체를 힘써 지키는 것이, 복음 안에서 마땅히 보여야 할 삶의 열매라는 점을, 바울 사도는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장재형목사” 또한 여기서 교회론의 핵심은 “하나 됨”이라면서, 우리가 각각의 재능과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3. 교회의 하나 됨과 삼위일체적 하나님 이해

교회의 하나 됨(Unity)은 에베소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바울은 “주의 몸은 하나이며, 성령도하나이고, 주도 하나이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니, 하나님도 하나이시다”(엡 4:4-6)고 역설합니다. 초대 교회는 수많은 박해와 내외부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 ‘하나 되심’에 대한 진리를 붙들고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교회사 전체를 살펴보면, 인간적인 권력 다툼, 신학적 해석 차이, 잘못된 이단 교리 등으로 인해 교회가 끊임없이 분열해 온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복음이 끊임없이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삼위일체적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바울의 선언과 일치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교회의 하나 됨을 설파할 때,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반드시 인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목전에 두고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제자들을 위해 간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 됨이 단순한교인 간의 외적 친목이나 행사 차원의 연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성령께서 하나이신 것같이, 교회도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것이 곧 교회의 하나 됨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6절이 내포하고 있는 “만유의 아버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며 만유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진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적 일치를 통찰하게 해 줍니다. 구약 시절 유대인들은 ‘여호와는 한 분’(신 6:4)이라는 엄격한 유일신 사상을 지녔고, 이방 종교의 다신론과 극명히 구별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곧 하나님 자신”임이 드러났고, 또한 성령님이 “주와 같은 본질을 가지신 분”으로 계시됨으로써, 교회는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성부·성자·성령 세 위(位)의 하나’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삼위일체적 이해가 에베소서 4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 구절(엡 4:4-5)에서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하며“성령이 하나이니” “주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성령·성자·성부의 이름을 연이어 언급하듯, 바울은성도들에게 “하나님이 하나 되심”을 다시금 각인시키며, 교회도 그 하나님을 닮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삼위일체론을 기초로 한 교회론”이라고 설명하며, 교회가 만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한다면,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나 이기적 파벌 싸움은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나아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초월적(Transcendent)이면서 동시에 내재적(Immanent)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 위에 초월적으로 군림하시면서, 한편으로는 교회와 역사, 그리고 개인의 심령에가까이 임재하십니다. 이러한 신론이 바로 믿음의 토대가 될 때, 교회 안에서의 윤리적 열매들이 풍성히 맺힙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자기 앞에 있는 이웃이 “이미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지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갈등과오해가 생겨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납하는 실천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특정 교단이나 신학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았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는다면, 근본적으로 서로 받아들이고 용납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합니다.

이렇게 에베소서는 교회의 일치를 논하면서, 단순히 “분열하지 말라”는 도덕적 수준의 요구를 넘어서, 삼위일체적 신앙고백과구원론적 토대 위에 실천을 세웁니다. 교회는 주께서 부어 주신 은사들을 따라(엡 4:7-12), 서로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분량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기 때문에, 각 지체가 다른 지체를 수종 들고 보완하고 세워나가는 것이 교회적 삶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6절에는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장재형목사”는교인 개개인을 ‘유기적 지체’로 비유하며, 모두가 제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지만, 어떤 부위가 교만이나 무관심으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몸 전체에 병리적 징후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에베소서 4장이 제시하는 교회의 하나 됨은, 단순히 교회 내 분열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이루시는 거룩하고 주권적인 연합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성화와 공동체의 영적 성숙이 함께 진행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하나 됨을 경험할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서로 겸손함으로 자신을 낮추고, 온유함으로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며, 오래 참음으로 갈등을 이겨 내고, 사랑으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는 공동체가 세상에 줄 충격과 감동은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와 다원주의 문화가 팽배하여, 교회의 “하나 됨”이 더욱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계속 분열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원리가 만연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의 메시지는 1세기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21세기 교회에도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며, 만유 안에 내재하신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면, 교회가 서로를 정죄하고 찢는 행위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세워진“한 새 사람”(엡 2:15)의 구성원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 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설교에서 이러한 에베소서 4장의 메시지를 접목하여, 구체적인 공동체 적용 방안을 제시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교회 내에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화하고, 양보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 가르칩니다. 또한 사회적 갈등 현장에 교회가 참여할 때, 힘이나 정치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십자가 정신에 입각하여 겸손과 온유로 섬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독려합니다. 결국 에베소서 4장은, 교회를 향한 바울 사도의 열정적 권면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가라는 강력한 초대(招待)라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에베소서 1-3장이 복음의 신비와 교리를 웅장하게 펼쳐놓았다면, 4장 이후는 그 복음의 실제적 열매로서 “교회의 일치와 성도 간의 사랑 실천”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가 지니고 계신 “하나 됨”의 본질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에베소서 4장 6절에서 명쾌하게 선포합니다. 교회가 이것을 붙들고 세상 가운데 나아갈 때, 진정한 화해와 연합,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룩한 공동체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도 이 점을 거듭 강조하며, 교회가분열과 대립이 아닌 용납과 용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연합을 이룰 때, 복음의 능력이 사회 전 영역에 강력하게 퍼져나갈 수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에베소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메시지는 “하나 됨”과 “사랑 안에서의 성장”입니다. 이는 교리와 윤리가긴밀히 연결된 상태에서, 삼위일체적 신론 위에 견고하게 서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몸으로도 이 위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효한 지침을 남겼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무너져 가는 이들을치유하고 품어주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 용납함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계시록에서 책망받았듯이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진리를 수호하는 투쟁 속에서도 헛된 열심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사랑, 교리와 윤리, 신앙고백과 실천을 균형 잡힌 모습으로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에베소서 전체의 메시지를받아들이는 교회의 참된 과제입니다.

“장재형목사”가 여러 설교에서 꾸준히 역설해 왔듯, 우리는 이 땅에서 서로 다른 배경, 성격, 재능, 상황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을 때,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 길에는 희생과 섬김, 사랑과 화해가 필요하지만, 이는 주님이 먼저 보여주신 길이며, 교회가 따라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 4장을 통해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본질적 메시지이며, 동시에 교회가 오늘날 더욱 붙들어야 할 영적 비전입니다.